[미디어세상=양은미 기자]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쓰던 임산부와 영.유아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문제가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벌어진 이후 5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관계자가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는 등 수사가 본격화됐다.

서울 중앙지검은 19일 옥시 레킷벤키저의 임원 김모 씨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검찰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말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이 구성돼 수사에 착수한 이후 업체 관계자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5년 동안이나 묵은 피해 유가족들의 응어리를 풀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국에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른 지 5년 만에.. 검찰 '뒷북 수사'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에 액체 살균제를 넣어 살균과 세척을 쉽게 하기 위한 제품으로 지난 1994년부터 시판됐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지난 2011년 4월로 임산부 4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으로 사망하면서 알려졌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17년간 연간 약 60만개의 제품이 팔려나갔고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시장에 등장한 이후 한 번이라도 사용한 사람은 모두 8백만 명에 이른다.

때문에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신고된 피해자 1282명, 사망자 221명은 빙산의 일각일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문제가 알려지자 조사에 착수한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피해자들의 사망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옥시의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과 롯데마트가 자체 pb상품으로 출시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에스겔 화장품의 ‘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 코스트코 PB상품인 ‘가습기 클린업’ 등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렸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정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2012년 4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 유통한 업체 19곳을 고소하고 업체를 상대로 사과와 피해보상, 재발방지책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2013년 검찰은 질별관리본부의 역학조사를 기다려보겠다며 기소중지결정을 내렸다. 개인별로 피해 인과관계가 있는지와 관련된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검찰은 2014년 8월에서야 경찰로부터 옥시 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8개 업체 기소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를 재개했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과 인과관계가 확인된다는 역학조사결과를 내놓자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임산부와 영유아의 잇따른 사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5년이 지나서야 관련 수사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 특별수사팀은 최근 3개월여 동안 옥시와 롯데 등 제조사에 대한 수차례 압수수색과 200여명의 피해자 확인조사를 실시했고, 19일부터 관련 업체 관계자 소환조사가 시작됐지만 별다른 수사 진전 없이 4년이란 시간을 보낸 검찰에 ‘뒷북 수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겉표지에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유해성 알면서도... ‘인체에 무해’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련 업체 중 롯데마트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롯데마트는 검찰 소환 조사가 진행되기 하루 전인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에 공식 사과하고 전담팀을 꾸려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침묵하다 소환조사를 눈앞에 두고 공식 사과한 것에 대한 피해자 가족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여론을 의식한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19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146명 가운데 가장 많은 103명의 피해를 입힌 옥시레킷벤키저의 임원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부터로 옥시는 PHMG 인산염 성분이 든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지난 11년 동안 제조·판매했다. 이 제품은 가습기 살균제 시장의 80%를 점유하면서 453만 개의 제품을 팔았다.

해당 제품의 PHMG(폴리렉사메틸린 구아니딘)은 현재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주로 소독용으로 쓰이는 화학원료다.

옥시는 PHMG 성분을 제품에 사용하면서 흡입 독성 실험을 비롯한 안전성 검사를 누락했고, 제품 겉면에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습니다'는 안내 문구까지 적어 허위로 안전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시중에 팔려나간 가습기 살균제는 몇 백명에 이르는 임산부와 영유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참사를 만들어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당국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 제도가 피해 키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유해물질을 사용한 업체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당국의 화학물질에 대한 허술한 관리 제도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앞서 2003년 원료 공급사인 SK케미칼이 호추 수출 과정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화학물질 취급설명서)에 PHMG를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긴 보고서를 정부와 국내제조사에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세퓨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의 경우 2003년 수입업체가 환경부에 제출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 스프레이 혹은 에어로졸 형태로 환경에 배출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물질은 경구 독성 실험만 이뤄졌을 뿐 흡입 독성 실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건축용 살균제 등으로 사용되던 물질이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됐지만 용도 변경에 따른 유해성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는 당국의 아무런 제재 없이 17년간 전국에서 판매됐다. 정부의 관리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물질의 용도를 바꿔 쓸 때는 다시 유해성 심사를 해야 했지만 당시에 그런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당시에는 가습기 살균제가 일반 생활용품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별도의 규정 없이 관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국의 규제 허점이 드러난 이상,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한 책임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양은미 기자  yyyem12@mediakr.com